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UNDERSTANDING COMICS) 

옮긴이 김낙호 편집장님의 해설편 중 발췌하였습니다.


2. 발명품들

하지만 너무 이야기가 무거워지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먼저 덜 골치 아픈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만화의 이해>의 성공과 자신의 온라인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힘입어, 맥클라우드는 자신이 만화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여러 발상들을 담고 있는 ‘발명품’들을 본격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은 보다 현실적이고 어떤 것들은 다소 장난스럽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만화라는 본질에 대한 강력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몇 가지 발명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3).


24시간-만화

‘24시간-만화’는, 연속된 24시간 이내에 24 페이지짜리 만화 한편(온라인 만화의 경우는 24페이지 대신 100개의 칸)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이벤트’다. 사전에 스케치를 하거나 디자인 작업을 한다든지, 스토리 구상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규칙위반이며, 후반작업까지도 포함한 모든 작업이 연속된 24시간 이내에 무조건 끝나야만 한다. 그림도구나 참조자료, 음식, 작업중에 들을 음반 등 간접적인 준비 정도만이 사전에 허용된다. 24시간은 연속된 것이어서, 중간에 잠을 자든, 친구를 만나든 계속 시간은 흐른다. 하지만 이외에는 아무런 다른 제한조건이 없어서, 만화의 형식, 제작방식, 주제, 소재 및 기타 요소들은 완전히 작가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면, 맥클라우드에게 한부를 보내야 한다(이것도 규칙이다!). 이후 그 작품은 작가의 홈페이지에 다른 24시간-만화 들과 함께 올라가게 된다.

24시간 이내에 끝마치지 못했을 경우, 즉 ‘실패’를 추스리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24시간이 지나면 그 위치에서 중단을 하는 것(‘Neil Gaiman 버전’), 다른 하나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계속 한 후 시간을 기록하는 것(‘Kevin Eastman 버전’) 등이다.


원래 이 기획은 1990년, 원고 작업 속도가 (심지어 맥클라우드보다도) 느리기로 소문난 동료 만화가인 Steve Bissette의 팬 사인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두 페이지꼴로 원고작업을 할 정도로 극심한 슬럼프 시기였음에도, 정작 사인회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손이 거의 ‘날라다녔다’고 한다; 즉, 뭔가 원고에 임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원고 작업에 대한 어떤 다른 인식을 찾아보기 위해서 둘이서 각각 24시간-만화를 그려내기로 약속을 하고 시작을 했는데, 여기에 점점 더 많은 동료 만화가들이 진지하게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 ‘이벤트’는 꽤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어, 심지어는 24시간-만화의 변종으로 ‘24시간-연극’도 탄생했다. 극본, 오디션, 리허설, 공연까지 24시간 안에 해낸다는 규칙으로, 뉴욕의 실험적 성향의 극단들에서 처음 시도한 후 이내 널리 전파되었다. 현재는 세계 각지에서 24시간-만화를 그리는 ‘24시간-만화의 날’이 이벤트화 되어 있으며, 작품들을 단행본으로 묶어낸 책들도 발간중이다.

24시간-만화의 매력은 여러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일종의 미니멀리즘 운동으로서 가장 원초적인 만화그리기의 방식을 되찾는 연습일 수도 있으며, 쉽게는 단지 원고 속도를 빠르게 하는 연습일 수도 있다(물론 24시간-만화가 호응을 얻은 것은 전자의 요소가 컸을 터이다).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는, 말 그대로 ‘떠오르는 대로 바로 원고로 그려내는’ 즉흥성과 직관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기술적인 기교보다는 원석 그대로의 발상을 바로 드러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것은 완전히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인 만큼, 자기 통제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미국이나 서구의 만화가들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대단히 부유하고 생계유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양’에 대한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 한 것이 사실인 만큼, 재충전을 위하여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생계유지를 위해서 이미 한정된 시간 이내에 과도하게 많은 원고를 쏟아내야만 하는 한국의 여러 ‘주류’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이벤트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지 않을 듯 하다. 이미 지금도 그들은 어떤 작가적인 재충전(만화, 게임, 애완동물만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의 기회도 없이, 매일 나름대로의 24시간-만화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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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0) 2013.04.16
Posted by 도이트 :